제조업 4년간 끼임사 272건 분석
설치대상 중에 87%는 아예 없어
잘못 설치해 발생한 사망이 9.8%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2018년 12월 끼여 숨진 컨베이어 벨트 사고 현장. 태안/박종식 기자 anaki@ahni.co.kr
#1.
지난해 2월 경기도 용인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ㄱ씨가 분쇄기에 원료를 투입하다가 회전날에 몸이 끼여 숨졌다. 기계에 방호덮개나 방호울 같은 방호장치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비상정지 장치는 있었지만, ㄱ씨 홀로 작업하고 있었기에 장치를 작동할 수 없었다.
#2.
ㄴ씨도 한 제조공장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도로 펜스를 만드는 블로몰딩기로 작업을 하다가 몰딩기의 양쪽 금형에 상반신이 끼여서 결국 숨졌다. 이 몰딩기에도 역시 덮개와 같은 방호장치가 없었다.
최근 4년 동안 제조업에서 발생한 ‘끼임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분석한 결과 법적으로 방호장치를 설치해야 하는 현장 132곳 가운데 96.9%(128곳)에서 방호장치를 아예 설치하지 않았거나 잘못 설치해 재해가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주들이 산재 사망사고를 두고 “노동자 부주의” 등을 언급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최소한의 방호장치조차 설치되지 않아 노동자의 목숨을 잃게 만드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9일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담은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특히 제조업 현장에서 다른 업종에 견줘 끼임 재해가 더 자주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해 끼임 재해를 집중 연구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 동안 제조업 산재사고 사망자 1658명 가운데 30.6%가 끼임 재해였는데,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산재 사망사고에서 끼임사가 11.6%였던 것에 견줘 세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보고서는 2016년부터 4년 동안 제조업에서 발생한 끼임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한 중대재해조사보고서 272건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현장에 산업안전보건법상 방호장치를 설치해야 했던 사례는 모두 132건이었는데, 87.1%인 115건에서 방호덮개나 방호울 같은 방호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방호장치를 잘못 설치해 발생한 사망사고는 13건(9.8%)이었다. 반면 방호장치를 설치했는데도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수는 4건(3.0%)에 불과했다. 방호장치가 설치되지 않았던 115건 가운데 92건에서는 ‘기계에 가까이 접근 금지’ 등과 같은 적절한 방호조처가 이뤄지지 않은 게 사망사고의 직접 원인이 됐다.
제조업에서의 끼임 사망사고는 벨트컨베이어(18건), 천장크레인(17건), 지게차(17건) 등의 설비에서 많이 발생했다. 배합 혼합기(10건), 산업용 로봇(10건), 사출기(9건), 일반작업용 리프트(9건) 등이 뒤를 이었다. 작업형태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272건 가운데 청소나 점검 등 일상적인 업무를 할 때 발생한 사망사고는 47%였는데, 정비나 검사, 수리와 교체 등 비정형 작업을 할 때 발생한 사망사고도 53%나 됐다. 일상적인 업무가 아닌 작업을 할 때 안전과 관련한 조처가 더 정밀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작업형태별로는 ‘가동 중 수리 점검 시’ 사망사고가 62건으로 가장 많았고, ‘작업 유도자 배치 및 신호체계 미흡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30건, ‘보수 시 안전조치 불량’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27건 등이었다.
보고서는 이런 결과를 두고 “제조업의 끼임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방호장치 미설비와 정비, 수리 때의 운전정지 미실시와 같은 근본 원인을 파악해 이를 해결해야 한다”며 “아울러 기계에 접근 제한을 하고, 덮개를 하는 등 방호조처와 점검 수리 때 전원 차단 등 절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