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우리의 노동은 왜 해고로 끝나는가

관리자 | 2020.08.27 09:14 | 조회 922

우리의 노동은 왜 해고로 끝나는가

기사승인 2020.08.26  08:00:01



                

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활동가


  
▲ 임윤수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활동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인고용률 2위, 노인빈곤율 1위. 늙어서까지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나라, 늙어서까지 생계를 위해 일하지만 세계에서 노인이 가장 가난한 나라, 그리고 마지막 노동현장에서 돌아오는 것은 해고인 나라.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지만, 고령인구를 감당할 복지도, 일자리 대책도, 고령일자리로 인식되는 공공·경비·청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권 개선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경비노동자처럼 이직과 해고가 잦고, 명확한 업무범위가 없고, 무시와 폭언, 심지어 폭행을 감내하며 일하는 노동자는 보지 못했다. 국민의 대다수가 아파트에 살고 있고, 아파트는 점점 살기 편해지는데,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노동자는 왜 천대받게 됐는지 궁금했다. 경비노동자를 둘러싼 노동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선 아파트 산업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아야 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부엌·화장실·거실로 구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50년대 지어진 마포아파트다. 최초의 아파트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기존 주거 양식처럼 같은 연탄보일러를 사용했고, 기존 주거와 비교했을 때 더 편리한 점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파트 구조물 자체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아파트 산업이 발전하고, 아파트 주거 양식이 받아들여진 건 1970년대 강남개발 시기부터다. 강남개발을 시작으로 아파트가 곳곳에 생겨났고, 강남개발의 주된 목적은 국토를 개발한다는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정치자금 마련이었다. 정서적으로 맞지 않았던 아파트라는 상품을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작업들도 같이 수반됐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신(新) 국민이라면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기형적인 아파트 산업이 태동했고, 여러 정책의 시행과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 계급이동이 가능하다는 기대이익이 맞물려 작용하며 지금의 아파트 공화국이 완성됐다.

기형적인 아파트 산업구조는 다른 나라에서조차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럽의 아파트는 이주노동자나 빈곤층이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거주 공간이라는 이미지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라는 공간은 거주 공간으로 읽힘과 동시에 재산을 증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읽히고 있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비슷한 아파트 문화도, 이렇게 많은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일하는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다.

강남개발 착수를 위해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고, 180차례 개정, 공동주택관리법이 제정되는 50년 동안 경비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조항은 1개다. 이마저도 “경비원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로 끝난다. 경비노동자의 노동권은 사실상 방치돼 왔다.

흔히 알고 있는 노동현장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구분된다. 사용자가 소수, 노동자가 대다수인 사업장이 일반적이지만 아파트라는 독특한 노동현장은 그렇지 않다. 실질적인 근로계약은 경비용역업체와 맺고 있지만, 임금은 개별 입주민의 관리비에서 나온다. 폭언을 하는 입주민이 “네 주인은 누구냐”라고 말하고, “내가 너를 해고할 것이다”고 말하는 맥락도 여기서 나온다. 입주민도, 관리소도, 입주자대표회의도, 아파트에 거주하는 그 누구도 경비노동자의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아파트라는 독특한 노동현장은 노동자가 소수고, 사용자가 다수다. 다중으로 작동되는 감시체계는 경비노동자 지위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

1·3·6개월마다 사직서와 근로계약서를 새로이 작성하고, 재활용품 분리수거, 택배관리, 동대표 후보 선거도 대신 도맡아 한다. 심지어 아파트를 출입하는 입주민들에게 거수경례를 하기도 한다. 일상적인 무시와 폭언은 경비노동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 지위는 처음부터 열악했던 건 아니다. 한 경비노동자 증언에 따르면 경비노동자가 도맡아 하는 재활용품 분리수거도 경비노동자의 업무가 아니라고 했다. 부녀회에서 도맡아 했던 업무였고, 경비노동자는 보조적인 역할만 했다고 한다. 어느새 재활용품 분리수거는 경비노동자의 주 업무가 돼 있었다.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방치돼 왔던 경비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각 지자체마다 경비노동자 노동권 보호를 위한 정책들을 발표하고, 법 개정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는 일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법 개정 이후 상황에 지레 겁을 먹은 몇몇 입주자들은 선제적으로 경비노동자 해고를 추진하고 있다. 최저임금 전면적용과 최저임금 인상시 대규모 해고를 당한 뼈아픈 역사가 있다. 일부 입주민의 기지로 해고 추세에 제동을 걸었지만 또 이것에 기댈 순 없다. 비극적인 역사의 반복을 막고, 기형적인 구조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어쩌면 아파트 산업의 대전환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경비노동자들은 말한다. 이 노동이 우리의 마지막 노동이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싶다고. 우리 마지막 노동의 끝이 해고로 끝나선 안 된다.

임윤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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