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코로나19가 일깨운 '아프면 쉬자' 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해야

관리자 | 2020.03.19 10:13 | 조회 1085

코로나19가 일깨운 ‘아프면 쉬자!’…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해야

등록 :2020-03-19 05:00수정 :2020-03-19 07:44



정은경 “근무행태 개선” 논의 불댕겨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청 회의서 공식 요청
19대때 법안…정부 반대로 무산

디자인 장광석                    
디자인 장광석



#1. 지난달 26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대구의 한 콜센터 노동자 ㄱ씨는 근무 중 고열을 호소하며 관리자에게 조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코로나19 증상이 의심됐지만, 그는 곧장 집에 갈 수 없었다. 당시 콜센터 담당 매니저는 ㄱ씨의 체온을 수차례 측정하며 ‘그러니까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이냐? (집에) 가려면 조퇴 신청서를 써야 한다’며 1시간 넘게 그를 사무실에 붙잡아둔 것으로 전해졌다. ㄱ씨는 진단검사에서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이후 이 콜센터에선 6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2. 수도권 최대 규모의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직원 ㄴ(55·여성)씨는 지난 6일 오후 4시께 근무 중 재채기 등의 증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ㄴ씨는 정상 근무를 마친 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그가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8일이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콜센터지부는 ㄴ씨가 조퇴를 하지 않은 이유를 “당일에 연차를 신청하면 인센티브에 감점 사유로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아파도 쉴 수 없는 현실을 개선하려면 병가(질병휴가)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주요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에서 “코로나19를 통해 유급 질병휴가 등의 필요성이 확인됐다”며 “5월 국회에서 즉각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그 밖에도 유급 가족돌봄휴가와 재난휴업수당 등의 제도화도 요구했다.

앞서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지난 16일 “‘아파도 나온다’는 문화가 ‘아프면 쉰다’로 바뀔 수 있도록 근무 형태와 여건을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 본부장의 발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누리꾼들은 “아프면 쉰다는 게 우리나라에서 이제야 통용될 기미가 보인다는 게 놀랍다”(@superhyou***), “아파도 학교에서 죽으라는 말을 들은 어린이는 이제 아프면 쉰다라고 배우는 어른이 되었어요”(@memory_o***), “이제 ‘아파도 나온다’가 아니라 ‘아프면 쉰다’로 바뀐다니 너무 찡하다”(@11woow***)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정 본부장의 발언이 일하다 아파도 적절한 휴식을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을 꼬집은 데 공감한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엔 ‘업무상 이외의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한 병가 규정이 없다. 형편이 괜찮은 회사에서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등 ‘기업 복지’ 차원으로 병가를 주고 있을 뿐, 제도적으로는 병가가 보장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소규모 기업이나 영세사업장에선 연·월차 등 휴가를 사용해 치료를 받거나 심한 경우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코로나19의 경우 확진 판정을 받았거나 보건당국에서 자가격리를 통보받은 접촉자는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지만, 이는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감염병예방법에 따른 것이다.

법 개정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자가 다치거나 아플 때 30일의 병가를 주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한정애 민주당 의원이 19대 국회 때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의 반대로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병가 법제화가 일터의 문화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무사는 “큰 회사들과 달리 영세사업장에선 개별적으로 병가를 보장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아프거나 다치면 회사를 관둬야 하는 등 불이익을 많이 당한다”며 “병가를 법제화하면, ‘아파도 일해라’ 식의 직장 문화를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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