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빛나지 않는 곳에 '간병 노동'이 있다

관리자 | 2020.04.23 11:53 | 조회 490
빛나지 않는 곳에 ‘간병 노동’이 있다
         
        
  • 김영화 기자
  • 호수 658
  • 승인 2020.04.21 16:43


요양시설 집단감염 이후 코로나19 전담병원 등에서 일하는 간병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확진자와 접촉하는 등 감염 위험이 크지만, 처우는 열악하다. 취약한 돌봄 일자리의 현실이다.
ⓒ시사IN 이명익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이윤숙씨. 치매를 앓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전담한다.


환자들을 가까이서 수발하다 보면 종종 난데없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아들 온단다. 고기 삶아라.” 병상에 누운 어느 백발의 어르신이 식사를 거부한 이유였다. 치매를 앓고 있었다. 이윤숙씨(58)는 레벨 D 보호구를 착용하고서 능숙하게 장단을 맞춘다. “네, 이따가 삶아놓을게요. 이거 먼저 잡수시고.” ‘미숫가루가 먹고 싶다’는 갑작스러운 요구에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미숫가루라고 속이기도 했다. 이씨는 “거짓말쟁이가 다 돼간다”라며 웃었다.


요즘 그는 고령의 코로나19 확진 환자들을 돌본다. 2시간 안에 환자 4~5명을 혼자 수발하려면 기지가 필요할 때가 많다.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엄마’를 찾는 환자도 있었다. “왜 엄마가 보고 싶으냐고 물어보니 ‘내가 부를 사람이 엄마밖에 없다’ 그래요. 어르신들 얘기 듣다 보면 안타까운 사연도 많아요.” 코로나19의 최전선, 의사와 간호사가 닿지 못하는 이야기들에 이씨는 좀 더 가까이 있다. 그는 요양보호사다.


이윤숙씨는 지난 3월18일부터 코로나19 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중증 치매를 앓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전담한다. 환자와 가장 밀접하게 접촉하다 보니 사사로운 불만 사항부터 내밀한 이야기까지 이씨에게 접수된다. “시답잖은 말이라도 들어주고 어르신들 마음을 편하게 해드려야 금방 낫지 않겠어요.” 끼니마다 식사 수발을 하고 칫솔질을 돕는 일, 기저귀 가는 일, 몸을 수건으로 구석구석 닦고 용변을 처리하는 일, 이동 변기와 소변줄을 소독하는 일 모두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의 몫이다. 진단과 약물 투여 같은 의료행위 이외의 일을 전담하고 있다. 요양원에서 2년간 근무했던 터라 ‘어르신 응대’는 자신이 있다. 다만, 보호구를 착용한 채 움직이다 보니 호흡곤란과 두통에 시달린다. 요양보호사 중에는 구토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씨가 코로나19 전담병원에 투입된 건 요양시설에서 발생한 집단감염 때문이었다. 지난 2월 경북 봉화 푸른요양원(68명)을 시작으로 대구시 제2미주병원(193명), 한사랑요양병원(127명), 대실요양병원(100명) 등 요양시설의 고령 환자들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4월16일 기준 확진자 수). 이들이 병원으로 오자 기존 간호 인력만으로는 부족했다. 지난 3월 초 보건복지부와 대구시 사회서비스원에서는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간병사 등 ‘간병 노동자’들을 긴급 모집했다. 대구시 사회서비스원에 따르면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된 요양병원과 자가격리 대상자 가정 등 긴급돌봄 서비스에 지원한 인원은 4월8일 기준 600명이 넘는다.

ⓒ시사IN 이명익4월8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환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병실로 이동하고 있다.

감염 위험 크지만, 마스크 얻기도 어려워


이윤숙씨는 남편과 사별한 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홀로 생계를 이어왔다. 손목 인대가 늘어나 일을 잠시 쉬고 있던 때,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갑자기 늘었다. 대구에서 받은 혜택을 갚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대 초 대구 종합복지회관에서 3년간 기능교육을 받았던 것이 이씨 인생에 큰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생활 수기 백일장에서 상을 탔고,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복지회관은 이번에 코로나19 확진자들이 다수 거주한 걸로 알려진 한마음아파트에 있었다. 이씨에게는 ‘자립’을 도와준 곳으로 기억된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것도 고용노동부 지원이 있어서였다. 이럴 때 나라에 힘이 되고 싶었다. 이씨가 한 달째 경북 경산에서 차로 40분 거리를 달려 출근하게 된 배경이었다. 이씨처럼 대구동산병원에 파견된 간병 노동자들은 30여 명이다.

‘간병 노동’에 대한 처우는 다른 의료 행위에 비해 가볍게 여겨진다. 보건복지부가 지급하는 요양보호사의 인건비는 하루 8만원(위험수당 제외)이다. 확진자들과 밀접 접촉하는 만큼 감염 위험은 가장 크다. 역시 대구동산병원에서 일하는 김미혜 요양보호사(33)는 “환자들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보호구를 탈의할 때 조심스럽고 겁이 난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1일 함께 파견된 요양보호사 한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월 말 처음 이윤숙씨가 투입될 때만 해도 매일 병실에서 사망자가 나왔다. “화장실 가신다고 해서 손 잡아드렸는데, 다음 날 가보면 침대가 비어 있더라고요.” 당시 이윤숙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전쟁터에 죽으러 간다”라고 말해두었다.


대구동산병원의 간병 노동자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들이 자가격리 대상이 되었을 때, 혹은 요양시설이 코호트 격리가 되었을 때 요양보호사와 간병사, 간병인들이 보호구를 착용하고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확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동행 격리된다. 요양보호사는 국가공인자격증을 취득한 준의료인으로 주로 요양시설에서 근무하며, 간병사는 민간자격증을 취득한 사람, 간병인은 별도의 자격증 없이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환자나 그 가족들은 간병사와 간병인을 구분 없이 쓰기도 한다.

4월5일 중앙재난대책본부는 의료인력 중 코로나19 확진자는 전체 확진자의 2.4%(241명)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의사 25명, 간호인력 190명, 기타(임상병리사·방사선사 등) 26명으로 집계되었다. 이 숫자에 간병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칠곡경북대병원, 의정부성모병원, 대실요양병원 등에서 간병 노동자들의 확진 사례가 산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들만을 따로 집계한 통계는 없다.


지난 3월13일 청도대남병원에서 일하던 간병인(77)이 사망했다. 국내 두 번째 사망자의 간병인이었다. 그의 죽음은 의료진 사망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정신병동에 있던 환자가 폐렴 증상이 나타나 일반병실로 옮겨지자 간병인이 필요해진 병원 측에서 그를 급히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뇨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던 그는 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엿새간 돌보다 감염되었다. 77세 간병인이 받은 24시간 일당은 10만원, 시급으로는 4200원이었다.

“간병 노동자들이 죽을 때 보면 너무 비참해요. 죽어라 일만 하다 가는 거야. 늙어서까지 쉬지도 못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사 임순덕씨(66·가명)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청도대남병원 간병인의 죽음은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임씨 역시 24시간씩 6일을 병원에서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 집에 간다. 하루 10만원씩 주급을 받고 있다. 대개 간병사나 간병인의 임금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24시간 기준 8만~11만원으로 책정된다. 시급으로 따지면 3500~5000원,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다. 임씨에겐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제’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간이 의자에서 쪽잠을 자면서 언 밥을 녹여 먹어요. 씻을 공간도, 제 침낭 하나 둘 공간도 없어요.”


간병 노동자들은 감염병이 유행할 때는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직업군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의료 종사자 34명 중 간호사(12명)에 이어 간병인(8명)이 두 번째로 많이 감염되었다. 옴, 결핵 등 전염성 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간병하다 병을 옮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아토피나 알레르기인 줄 알지만 병원 진단을 받고서야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된다. 대구에서 17년째 간병사로 일하는 박주경씨(67·가명)는 “병원에 갔더니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에게 옮았는지 알 수가 없다. 살기 위해 간병을 했는데 병을 얻게 되는 거다”라고 말했다.


간병사나 간병인은 개인사업자 형태로 일하는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환자들이 다치는 상황에 대비해 배상책임보험을 들고 있지만, 일하다 본인이 다칠 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개인사업자 신분 때문에 마스크 하나 얻는 것이 쉽지 않다. 고용노동부의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지침(7판)’에 따르면 특수고용 종사자에게도 위생관리에 필요한 보호구 및 위생용품을 비치하거나 구입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하지만, 현장 상황은 여의치 않다. 간병사 최경자씨(63·가명)는 일주일에 덴탈 마스크 2개를 받고 있지만 24시간 근무라 부족하다. 손 세정제와 마스크 여분을 직접 구비해서 쓰고 있다. 24시간 병원에 상주하기 때문에 사러 갈 짬을 내기도 어렵다.

ⓒ연합뉴스3월11일 돌봄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코로나19 안전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고령 여성 20만명이 돌봄 서비스 지탱


감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돌봄을 필요로 한다. 4월8일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간병인을 찾는 모집 글이 눈에 쉽게 띄었다. ‘강남 세브란스병원 간병인 구합니다. 폐렴 치료하셔서 현재 가래 치료 중이시고 기저귀를 차셔서 대소변 처리도 있습니다. 하루 6만원.’ ‘안산 고대병원 24시간 간병인 찾아요. 소변통 봐주시고, 기저귀 갈아주시면 됩니다. 하루 11만원.’ 간병사 김미화씨(71·가명)도 지난 4월10일 3박4일치 짐을 싸서 병원으로 출근했다. 자녀들의 만류가 심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한두 달 안에 끝날 것 같으면 모를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쉬고만 있을 수는 없거든요.”


국내 간병 노동자는 20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대부분이 60~70대 여성이다. 이혼, 사별 등의 이유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많다. “노인들이 어디 가서 하루에 10만원씩 받는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간병사 임순덕씨가 간병 노동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집에선 어른이고, 엄마인데 병원에 오면 간병인이 돼요. ‘간병사’라는 정식 호칭으로도 안 불리거든요. 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요양보호사 이윤숙씨는 대구동산병원에 자원한 이후로 “사람 살리러 갔네” “진짜 애국자다”라는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들으며 처음으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지난 4월3일 경북 경산에서 내과 의사가 코로나19로 숨져 국내 첫 의료진 사망자가 발생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SNS를 통해 “이 역사의 주인공은 분명 의료진들이 될 것이며,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기록될 것이다”라며 애도를 표했다. 훗날 코로나19 역사에 이윤숙씨와 같은 간병 노동자도 영웅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한 달을 보낸 이씨는 이렇게 답변했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출처 :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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