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이럴거면 남자만 부르지" 도 넘은 성차별 면접, 페미니즘 사상 검증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부터 시행돼야"
"여자는 군대에 안 갔으니 남자보다 월급을 덜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군대에 갈 생각이 있느냐" 등 동아제약 면접관의 성차별 질문이 논란이 된 이후 '나도 기업 면접에서 성차별 당했다'는 경험담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채용 과정에서 반복되는 성차별 문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법·제도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집단주의적인 조직 문화가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장인 박모(29)씨는 취업준비생 시절 기업에서 3명의 남성 면접관으로부터 "결혼을 언제 할 것이냐, 결혼할 남자친구가 지금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또 박씨는 "남성 중심의 문화인데 적응이 가능하겠느냐"라는 질문도 받았다. 박씨는 "여성은 조직에 잘 적응을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한 질문"이라며 "여성으로 태어났고, 성별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럴 바엔 남성만 최종 면접에 올리지, 여성은 왜 올려서 이렇게 수모 아닌 수모를 주나'라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지난 2월 한 중소기업 경력직 채용 면접에서 "미투 운동 때문에 여자를 뽑을 생각이 없는데 그래도 불러봤다"는 말을 들었다고 트위터에서 밝혔다. A씨는 "네? 미투요? 미투는 남자가 잘못해서 발생한 일이 아닌가요?"라고 답했고, 면접관은 "사전에 미투를 방지하기 위해 여자를 뽑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후 "결혼할 생각은 있느냐"는 면접관의 물음에 A씨는 "결혼할 생각이 있다"라고 답하자, 면접관은 "여자들은 결혼하고 애 낳고 하면 금방 회사를 관둬서 문제"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성차별적 면접 질문에 이어 페미니즘 '사상 검증'을 당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지난 12일 게임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B씨는 게임업계 대표 업체 '3N'(넥슨·엔씨·넷마블) 중 한 곳의 면접에서 "당신이 결정권자라면 SNS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이슈가 된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게임에서 지우겠나"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B씨는 "'해외 유학경험 이후 인종차별, 젠더 이슈 등의 주의해야할 표현에 관심이 많아 제작시 늘 의식하고 있다'고 면접에서 이미 밝혀 창작 윤리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채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차별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왔다. 여성가족부는 성차별적 채용 근절을 위해 2019년 '성평등 채용 안내서'를 제작·배포했다. 기업이 면접 과정에서 성별을 이유로 질문을 달리하지 않아야 하고, 군대 경험처럼 특정 성별에만 유리하거나 불리한 주제에 관한 토론 또는 질문이 부적절하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또 개정 채용절차법은 기업 채용 과정에서 신체적 조건이나 출신 지역·혼인 여부·재산 등 직무 수행과 상관없는 정보를 기초심사자료로 요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법과 제도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이 30명 이상 고용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이력서·자기소개서 등 기초심사자료상의 성차별적 요구만 금지하고 있어 면접 질문은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로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이 개정된 2019년 7월 이후 노동부에 신고된 위법 행위는 559건에 달했다. 이 중 338건(60.5%)은 구직자들의 신체적 조건이나 개인정보를 요구한 사례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와 관련 단체들은 우리 사회 집단주의적 조직문화가 이 같은 사례를 배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면접관이 수행해야 할 업무에 대해 평가하기 보다는 업무와 무관한 개인의 사상을 검증하는 질문을 물어보는 이유는 집단에서 개인에게 동질적인 가치관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조직 문화는 '이래야 해'라는 선입견 속에서 운영되다 보니 채용 과정에서도 직무와 무관한 질문이 나오는데, 채용 과정이 업무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과정인 만큼 직무와 관련한 질문을 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적 제도 개선도 시급하게 요청됐다.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은 "면접 과정에서의 성차별적 질문에 대해 개선 권고사항으로만 두고 있어 차별을 받은 구직자가 여전히 법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채용 성차별이라는 명백한 불법행위를 한 거대기업을 향해 개인이 홀로 싸움을 하게 하는 것은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채용의 현장에서 남녀고용평등법의 취지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를 시행하고, 국회는 법을 바꾸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Copyrights ⓒ (주)이비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출처 : 데일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