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노동자의 밥상] ⑥ ‘6411번 버스’ 타는 청소노동자
“차 무너지겠어…” 오늘도 꽉 찬 6411 버스
반찬 봇짐 진 노동자 싣고 새벽을 가른다
승객 대부분 빌딩 청소 60~70대
출발한 지 11분 만에 콩나물시루
“전쟁이야 전쟁” “사람 끼였어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사람들 타기에
느닷없이 버스 안 장터 열리기도
“햇김 하나 줘” “돈 받아” 진풍경
“차 무너지겠어…” 오늘도 꽉 찬 6411 버스
반찬 봇짐 진 노동자 싣고 새벽을 가른다
승객 대부분 빌딩 청소 60~70대
출발한 지 11분 만에 콩나물시루
“전쟁이야 전쟁” “사람 끼였어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사람들 타기에
느닷없이 버스 안 장터 열리기도
“햇김 하나 줘” “돈 받아” 진풍경
지난 7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한 6411번 버스 첫차가 강남 쪽 일터로 향하는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첫차는 출발 11분 만에 만석이 됐다. 새벽 4시 서울 구로의 작은 공원에서 출발한 6411번 버스가 영등포와 동작을 거쳐 강남 복판의 마천루로 향하는 동안 어두운 점퍼에 주름진 얼굴을 파묻은 이들이 꾸역꾸역 버스에 올랐다. 올해 예순일곱이 된 김순남(이하 모두 가명)은 개중에서도 바지런하다. 동쪽 하늘에 샛별이 걸린 새벽 3시40분, 김순남은 집 앞 정류장을 두고 날마다 15분을 걸어 6411번 종점인 구로 거리공원에 당도한다. 겨울비까지 내리던 지난 7일 새벽에도 그는 홀로 버스 종점에 서 있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자리가 없어요. 새벽부터 1시간 동안 서서 가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하기 정말 힘들거든.” 버스가 도착하자 김순남처럼 일찌감치 종점에 와 기다린
전쟁통 같은 출근길
6411번 첫차에 올라탄 이들은 성별이 달라도 차림새와 나이대, 인상이 서로 닮았다.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은 생전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탄다. 누가 어느 정류소에서 타고 어디서 내릴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라며 이 버스를 타는 ‘투명인간’들을 세상에 알렸다. 대개 60대이거나 70대인 6411번 첫차의 승객들은 하는 일을 물으면 “미화 일을 한다”고 답했다. <한겨레>가 지난달 18일과 이달 2일, 7일 세차례에 걸쳐 6411번 첫차를 타고 질문을 한 승객 열에 아홉은 강남에 있는 빌딩의 청소노동자였다.
7일 새벽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 버스정류장에서 이 버스의 첫 승객들이 6411번 버스에 오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버스에선 밥상을 위한 장터가 열린다첫차를 타는 이들은 하는 일과 겉차림만큼이나 고된 새벽 노동 뒤 챙겨 먹는 아침밥의 내용도 닮았다. 승객 대부분이 둘러멘 등가방에는 작업복, 무릎담요와 함께 아침과 점심때 먹을 반찬도 실려 있다. 새벽 노동하러 가는 이의 도시락에 산해진미가 들었을 리 만무하다. 김치나 멸치, 나물처럼 대개 고봉밥을 가득 떠 넣기 위해 필요한 짭짤한 찬거리가 담겼다. “거기서 거기야. 다 똑같아.” 아침은 잘 챙겨 먹느냐는 물음에 예순여섯살 송병중은 손사래를 쳤다. “김치에다 한가지 아무거나.” “김치, 알타리, 그리고 갓김치.”첫차 승객 중엔 건물에서 나오는 파지를 모아 팔고 그 돈으로 밥상을 차리는 이들도 있다. 일흔네살 박정래는 “옛날에는 파지를 모아서 쌀 사 먹었는데 요즘엔 파지가 잘 안 나오니 쌀 사 먹기가 바쁘다”고 했다. 김순남의 처지는 그나마 낫다. 김순남의 일터 휴게실에는 주방이 있다. 가스레인지와 싱크대가 구비돼 있다. 다른 이들이 전기밥솥 달랑 하나로 살림하는 것과 달리 김순남이 일하는 빌딩에선 국을 끓이고 생선도 굽는다. 김순남을 포함한 미화원 6명이 오이소박이, 고추장아찌, 깻잎과 콩나물무침을 가득 쌓아두고 고봉밥을 뜬다. 때로 집에서 고기를 가져오는 날도 있다. “우리는 잘 해 먹어. 아침도 뜨신 밥 먹고 점심도 뜨신 밥 먹고. 먹을 거 없는 날은 김치 대가리 잘라서 찌개도 해 먹고.”
김순남의 일터 밥상. 오이소박이, 고추장아찌, 깻잎과 콩나물무침을 가득 쌓아두고 하얀 쌀밥을 뜬다.
7일 새벽 6411번 버스 첫 차 안에서 승객들이 빌딩 청소 현장 밥상에 올릴 김을 거래하고 있다. 매일 거의 같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 안에서는 계절에 따라 반건조 생선, 과일, 김 등이 거래된다. 파는 이도 사는 이도 모두 빌딩 청소노동자들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7일 새벽 빌딩 청소 노동을 하는 김순남씨가 6411번 버스 첫차를 타고 서울 강남구 선릉역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