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27살 이윤재와 38살 이재학,,, 스스로 목숨 끊는 피디

관리자 | 2020.02.10 15:38 | 조회 1162

27살 이윤재와 38살 이재학.. 스스로 목숨 끊은 피디

충북인뉴스 김남균 입력 2020.02.10. 10:54

청주방송과 노조에 묻습니다, 이 죽음은 어디서 시작됐나

[오마이뉴스 충북인뉴스 김남균 기자]

[이전 기사] CJB청주방송 노조, 사측에 PD 죽음 사과와 재발방지 촉구

청주방송에서 벌어진 죽음의 행렬을 보면서 한마디 질문을 던집니다.

"이 슬픈 죽음은 과연 어디서 비롯됐습니까?"
 
 지난 2월 4일, 청주방송에서 14년간 프리랜서로 일했던 이재학 피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애청자들은 청주방송 앞에서 그의 죽음을 추모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사진 : 독자제공)
ⓒ 충북인뉴스
  
 지난 2월 4일, 청주방송에서 14년간 프리랜서로 일했던 이재학 피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애청자들은 청주방송 앞에서 그의 죽음을 추모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사진 : 독자제공)
ⓒ 충북인뉴스
 
지난 2월 4일 청주방송에서 14여 년간 일했던 이재학 피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중략) 억울해 미치겠다. 모두 알고 있지 않을까? 왜 그런데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

고 이재학 피디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그의 죽음을 접하면서 핏줄이 살갗을 뚫고 피를 튕기듯 또 다른 죽음이 떠올랐습니다.

2012년 청주방송에서 발생한 젊은 프리랜서의 죽음

죽음의 주인은 당시 27세의 청년 고 이윤재. 

2012년 4월 1일. 이윤재씨는 새벽 5시 10분경 회사를 떠났습니다. 밤샘 작업 후 퇴근이었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미리 약속된 축구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다시 8시 30분경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10시경 청주 인근의 모 풋살장에서 경기는 시작됐고 그는 골키퍼를 봤습니다.

풋살 경기 시작 10분 후에 그는 쓰러졌습니다. 고인의 사인은 과로에 의한 심인성 쇼크. 2011년 7월 입사한 뒤 채 10개월이 되기도 전에 27세의 청년은 만우절에 거짓말 같이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이윤재씨의 근무 환경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2012년 1월 15일 그는 자신의 SNS 계정에 "32시간 동안의 편집. 드디어 끝났다. 새 코너에 새로운 편집. 빡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1월 31일에는 "아! 드디어 스페셜 특집 편집 끝. 이제 잠 못자고 밤 새는 건 일도 아닌 듯. 36시간의 밤샘편집과 촬영. 그저 웃지요"라고 썼습니다.

2011년 7월 14일 청주대신문방송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씨는 청주 방송과 조연출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담당 PD, 그와 같은 프리랜서로 계약된 작가와 한 팀이 된 그는 촬영과 영상편집업무를 수행합니다.

일주일에 3일 정도 촬영이 끝나면 그는 나머지 3일 동안 편집 업무를 수행합니다.
 
 청주 방송 입사 10개월만에 장시간 밤샘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2012년 4월 사망한 고 이윤재씨. 사진은 그의 친구들이 28번재 생일을 맞아 2013년 SNS에 게시한 사진
ⓒ 충북인뉴스
 
비정규직인 그에게 주간 시간대에 방송국의 편집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편집업무는 정규직원이 퇴근한 뒤인 밤에 진행됐습니다.

고 이윤재씨는 취업 3개월째인 2011년 9월 28일에 "오늘도 난 편집. 죽을 것 같은 9월이 빨리 지나갔으면... 내 다크 써클은 점점 내려오네"라고 SNS에 글을 남겼습니다. 그해 11월 10일에는 "이틀 밤째 편집. 7시간 후엔 촬영을 갔다와야 하는데... 버틸 수 있겠지?"라며 자신에게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이 씨가 사망한 뒤 유족으로부터 산재승인업무를 위임받아 소송을 진행한 김민 노무사는 이씨의 과도한 업무는 상상이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노무사의 말에 따르면 보통 일주일에 이틀은 밤샘 작업이 기본이었습니다.

그들이 받는 것은 급여가 아닌 '제작비'
 
 청주 방송 입사 10개월만에 장시간 밤샘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2012년 4월 사망한 고 이윤재씨. 사진은 그의 친구들이 28번재 생일을 맞아 2013년 SNS에 게시한 사진
ⓒ 충북인뉴스
 
고 이윤재씨는 당시 청주방송으로부터 한 편당 25만원을 수령했습니다. 월로 환산하면 100만원에서 최대 125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씨가 청주방송으로부터 받은 것은 월급이 아니었습니다. 정규직 직원들의 급여는 인건비로 책정되지만 이씨와 같은 프리랜서의 급여는 제작비에 포함됐습니다.

프리랜서란 이유로 4대보험도 가입돼 있지 않았습니다. 주당 60~70시간 월 260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대한 보상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밤샘 노동에 지친 이윤재씨는 2012년 2월 24일 "고요한 밤. 잠 못 이루고 있는 분 계신가요? 저 심심해요. 말동무 되어 주실 분"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8년이 지나 또 다른 이윤재인 고 이재학 피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된 이재학 피디의 노동조건은 8년 전 고 이윤재씨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변하지 않은 것, 그리고 구성원들의 '침묵'

변하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청주방송의 대응 논리입니다. 이씨의 유족들에 따르면 2012년 이윤재씨가 사망하자 청주방송은 어떤 금전적 보상도 하지 않습니다. 그때 내세운 사유는 이윤재씨가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라는 것입니다.

지난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재학 피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는 고 이재학 피디가 제기한 소송에서 일관되게 같은 논리를 폈습니다.

회사의 주장에 맞서기 위해 고 이재학 피디와 이윤재씨의 유족에게 필요한 것은 '증언'이었습니다. 회사의 관리·감독하에 업무를 했다는 증언이 필요했습니다. 현행 법률에선 법적인 고용관계가 성립된 노동자가 아니면 산업재해보상도, 부당해고라는 것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 이재학 피디의 경우 소송을 제기한 이래 청주방송의 지휘감독 하에서 업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이 맡은 조연출·연출 등 프로그램 제작 업무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받은 사업 관련 업무까지 했다고 말입니다.

이재학 피디의 비정규직 동료들이 작성한 진술서에 따르면 이재학 피디는 사업계획서, 보조금 협의 관련 문서, 보조금 신청문서, 정산 및 증빙서류 등 결재 문서를 기안했고 다시 회사의 결재 라인을 따라 처리됐습니다. 고 이재학 피디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결재나 보고를 하지 않으면 담당 국장에게 혼난 적도 있다고 진술합니다.

그러나 정작 고 이재학 피디와 업무관계를 맺었던 정규직 구성원들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 해주지 않습니다. 고 이윤재씨의 경우도 그랬고 이재학 피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름다운 연대'를 만들었던 청주방송 노조

1997년 10월에 개국한 청주방송의 역사는 '정리해고'라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출발합니다.

개국과 더불어 몰아친 IMF 경제한파 속에 청주방송은 1998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발표합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회사는 계속해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해고가 빈번하게 진행됩니다. 이에 대해 청주방송은 권고사직을 포함한 구조조정이라 해명했습니다. 반면 일부 노동자들은 '해고'라며 법적 소송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반면 노동조합은 '정리해고'를 극복하기 위해 출발합니다. 1998년 노동자들은 청주방송의 정리해고에 맞서 전국언론노동조합청주방송지부(이하 청주방송노조)를 설립합니다. 기자와 피디, 기술국 직원들이 참여해 53일이라는 장기파업을 진행했습니다.

청주방송노조가 파업을 시작하자 충북지역의 노동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도 아낌없이 연대합니다. 싸움의 결과는 노동자들의 승리. 정리해고는 철회됐고 대신 '1년 무급휴직 후 원직복직'이라는 결론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무급휴직자의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서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임금을 갹출하기로 했습니다. IMF 경영위기를 이유로 가뜩이나 임금이 삭감된 상태여서 자신들의 임금을 갹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였습니다.

'아름다운 연대'라는 단어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정리해고에 내몰린 청주방송의 노동자들에 대한 지역의 연대와 내부 구성원들의 자기희생을 통해 공존공생의 바탕을 만든 청주방송노조. 노동계에선 이를 두고 '아름다운 연대'라 불렀습니다.

'아름다운 연대'는 어디로 갔습니까

1998년 이후 벌써 22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름다운 연대'의 주역들도 이제는 어느새 이 회사의 중견간부가 됐고 핵심 간부의 지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12년 고 이윤재씨, 2020년의 고 이재학 피디와 직간접으로 업무와 관련된 분들도 있습니다.

법원에선 고 이재학 피디와 관련해 제출된 비정규직 동료들의 진술서를 배제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재학 피디와 업무상 관계된 정규직 노동자들의 증언입니다.

진실은 둘 중 하나입니다. 청주방송의 주장처럼 회사의 지휘통제와 관리감독의 범위에서 벗어나 일을 수행했을 수도 있고, 두 명의 망자와 유족들이 주장하는 내용일수 있습니다.

1998년 '아름다운 연대'로 만들어진 청주방송 노조의 주역들은 진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27세와 38세. 꽃다운 청년들의 죽음 앞에서 그들이 분개하며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서 당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청주방송을 비롯한 방송계의 기형적인 인력구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정규직 채용은 배제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됐습니다. 프리랜서란 명목으로 정규직이 수행했던 업무는 비정규직으로 대체됐습니다. 정규직이 오늘 누리고 있는 노동조건과 임금 수준은 이들의 희생 위에 이뤄진 '피골탑'일 수 있습니다.

청주방송에서 유독 발생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 '프리랜서냐, 아니면 노동자냐', '정당한 구조조정이냐, 아니면 부당한 해고냐'란 논란도 사치스럽습니다. 27세와 38세의 꽃다운 청춘의 연이은 죽음 앞에서 '아름다운 연대'의 주역들은 답해야 합니다.

이 죽음은 과연 어디서 비롯됐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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