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나 임금 못받앗어. 아이들 부탁해 어느 노동자의 유언

관리자 | 2020.02.08 10:38 | 조회 1017

"나 임금 못 받았어, 아이들 부탁해" 어느 노동자의 유언

전북CBS 남승현·송승민 기자 입력 2020.02.08. 06:06

군산 아파트 극단적 선택 40대 노동자
서 너 명이 근무하는 공정 혼자 도맡아
명절前 30명 석달치 임금 '1500만원'
다단계 하청업체.."우리 목표는 도망"
'유가족께 죄송합니다' 지난 4일 김제의 한 공장에서 근무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노동자, '임금 체불' 문제로 구성된 단체 SNS 대화엔 위로와 죄송한 마음이 공존했다. (사진= 남승현 기자)
"엄마 나 임금이 안 나와서 문제가 생기면 남은 아이들 좀 부탁해요."

노동자 조모(45)씨가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그리고 두 시간 뒤 군산의 한 아파트 아래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난 4일 오전 7시, 여든을 넘은 노모에게 전화해 어린 자녀 3명을 부탁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그에겐 어떤 어려움이 있었던 걸까. 최근 한 달간 조씨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며 임금은 10원도 받지 못했다는 동료 박모(50)씨. "우리의 목표는 도망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증언을 통해 조씨의 죽음을 돌아봤다.

◇ 석 달 근무, 받은 돈 '0원'

7일 오전, 전북 전주시 덕진구 민주노총 전북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박씨는 "고인이 된 조씨가 임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조씨는 지난 11월 15일 첫 근무를 시작으로 설날 직전인 1월 말까지 3달간 전북 김제의 한 공업단지에 나왔다.

주된 작업은 보령화력발전소 설비를 떠받치는 구조물 제작이었다. 조씨는 화력발전소에서 공사를 발주한 모 대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받은 하청업체의 또 하청업체 소속이다. '원청→1차 하청→2차 하청' 신분인 그가 맡은 일은 철골의 모서리를 다듬는 '그라인더' 작업이었다.

조씨는 홀로 움직였다. 작업은 취부(쇠 절단)와 용접, 사상(그라인더) 등 크게 3단계로 나눠진다. 공장에선 약 30명의 근무자가 있는데 사상을 맡는 노동자는 단 1명, 조씨 뿐이었다.

숨진 조씨와 동료 박씨가 제작한 철제 구조물. 조씨는 용접 부위 등을 그라인더로 절삭하는 작업을 했다. (사진=박씨 제공)
근로계약서상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데 반해 실제 퇴근은 저녁 10시를 넘겼다.

박씨는 "보통은 3~4명이 붙는 작업이지만 조씨는 혼자 도맡았다"며 "그러니 퇴근은 늦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3살, 4살, 8살짜리 어린 자녀와 노모를 떠올리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씨는 설날에도 사장에게 밀린 임금을 달라고 연락했다. 설날 연휴 사장의 '희망 고문'은 조씨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박씨는 말했다.

"설날 연휴 조씨를 회사로 부른 사장은 '미안한데 줄 돈이 없다'면서 돌려보냈어요. 그 말을 들은 조씨는 비참함을 느꼈을 거예요. 설 연휴가 끝나고 직원들이 임금 지급 확인서를 써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마저도 거절당했어요."

◇ "우리의 목표는 도망"

'원청→1차 하청→2차 하청(조씨)→3차 하청→4차 하청(동료 직원)'

돈을 받지 못한 노동자는 숨진 조씨 한 명이 아니었다. 조씨가 소속된 하청업체의 하청업체, 다시 하청업체에 있던 노동자 30여 명도 대부분 임금을 받지 못했다.

그중 한 명이 박씨였다. 그는 "설날 직전 2차 하청엔 7000만 원이 내려오고 이중 다시 4차 하청에 1500만 원이 전달됐다"고 말했다. 명절을 코앞에 두고 직원 30여 명이 받은 돈이었다.

이 중에서도 일부 직원들은 더 어려운 동료에게 임금을 양보하기도 했다. 어느덧 직원들의 목표는 밀린 임금이 아닌, 작업장을 빠져나오는 것이 됐다.

박씨는 "1월 초에 왔더니 직원들이 2달 동안 돈을 받지 못했다"며 "어쨌든 계약이 맺어져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 목표는 빨리 이곳을 도망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식당 밥값과 숙소 월세도 3개월 치가 밀려있다. 노동자 대부분은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박씨는 홀로 남아 회사와 싸우고 있다. 조씨의 죽음이 임금 체불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숨진 조씨와 함께 일한 동료 박모(50)씨는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회사에서 도망을 꿈꿔왔다. (사진= 남승현 기자)

"저는 부산에서 왔어요. 다들 각자 지역으로 돌아갔는데, 조씨의 죽음이 억울해서 노조에 문제를 제기했어요. 책임자들이 노동자가 죽었는데도 조문은커녕 조화도 보내지 않은 게 너무 분해서 집에도 못 가고 이렇게 남아 있네요."

◇하청의 굴레

4차 하청업체까지 내려간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원청의 중간 정산금액 중 고작 5%만이 하청의 끝으로 내려왔다.

박씨에 따르면, 모 대기업은 보령화력발전소에서 특정 설비를 받치는 구조물의 제작을 발주 받았다. 이에 해당 대기업은 자재와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을 하청이 지출하고 납품을 완료하면 공사금액을 산정하는 '턴키(Turnkey) 방식'으로 A중공업에 1차 하청을 내렸다.

1차 하청업체인 A중공업은 인건비와 소모성 자재를 관리할 2차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A중공업은 철제 구조물의 자재 비용만 담당했다.

2차 하청업체는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다시 인력중개소를 찾았다. 3차 하청업체인 인력중개소는 또 다른 인력중개소인 4차 하청업체에 재하청을 줬다.

다단계를 거쳐 30명의 노동자에게 돌아온 건 고작 1500만 원이었다.

"3억 1000만 원의 중간 정산 금액이 원청에서 지급됐으나, 마지막 4차 하청업체에 내려온 돈은 고작 1500만 원에 불과했어요. 4차 하청업체는 1억이 넘게 밀린 30여 명 노동자의 임금을 감당할 수 없죠."

여기에 4차 하청업체에 속하면서도 2차 하청업체의 작업장소에서 1차 하청업체의 관리를 받았다는 게 박씨의 말이다.

박씨는 "1차 하청업체 감리 담당자가 작업장에 상주해 있었다"며 "일과와 작업진행 사항을 1차 업체에 보고했고 해당 업체에서 품질 확인도 했다"고 말했다.

민노총은 중간 단계에서 과도하게 정산금이 착취된 것으로 보는 한편, 조만간 피해 노동자들을 도와 체불 임금 진정에 나설 계획이다.

경찰도 숨진 조씨의 채무 상황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조사하고 있다.


[전북CBS 남승현·송승민 기자] nsh@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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