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실 에어컨 설치 반대" 목소리에 "2억원 지원" 내민 노원구
노원구가 400여개 아파트 경비실에 냉방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한다. 지난 2018년 서울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라는 대자보가 붙는 등 경비원에 대한 갑질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데 따른 것이다. 강북·송파·양천·영등포·구로구 등 서울 내 다른 자치구도 지원 조례를 개정하는 등 냉·난방기 설치에 나서고 있다.
━
1대당 최대 48만원…설치 시 지원사업 가점도
25일 노원구는 “지난 1월 공동주택 경비실 냉·난방기 설치 현황과 수요조사를 한 결과, 노원구 276개 아파트 단지 1390개 경비실 중 871개소(62.6%)만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며 “경비원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원구에 따르면 미설치 경비실은 약 521개소로 이 중 439개소는 에어컨 설치가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원구가 배정한 예산은 총 2억원이다. 에어컨 1대당 총 48만원까지 지원한다. 노원구는 다음 달 5일까지를 집중신청 기간으로 정하고 지원조건과 절차 등이 담긴 안내문을 입주자 대표회장, 관리사무소장 등에 우편 발송했다.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단지에는 올해부터 시설유지·보수, 공동체 활성화 프로그램 등 공동주택 지원사업에서 가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
“에어컨 반대” 논란에…자치구, “노동자 보호” 조례 개정
노원구가 경비실 에어컨 설치 사업에 나선 건 경비원에 대한 폭행 등 갑질 사건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데다 ‘근무환경도 열악하다’는 인식이 있었던 탓이다. 111년 만에 가장 무더웠다는 지난 2018년, 서울 중랑구의 한 아파트 단지엔 “매달 관리비가 죽을 때까지 올라가고, 공기가 오염되며 수명이 단축된다”며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이 사건 후 1년이 지난 2019년 서울시 조사 결과에서도 서울 내 경비실 9763곳 중 36%는 에어컨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경비실에 냉·난방기를 설치하지 않은 건 51%가 ‘주민 및 동대표 반대’가 이유였다. 예산 부족 및 장소 협소(31%), 에너지 절약·재건축 준비 중 등 기타(16%)가 뒤를 이었다. 자치구 ‘공동주택 지원조례’ 지원 항목에 에어컨이 없는 문제도 있었다.
각 자치구는 지원 근거 마련에 나섰다. 노원구는 지난해 11월 ‘노원구 공동주택 지원 조례’를 개정했다. ‘폭염·전염병 등 재해로부터 단지 내 경비원 등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전부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송파구도 지난해 5월 관련 조례를 개정한 데 이어 11월 ‘공동주택 경비원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도 제정했다.
━
송파구 82대, 마포구 첫 예산 배정…“주민동의 거쳐야”
양천구는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약 7200만원을 들여 경비실에 에어컨 235대를 설치했다. 마포구는 올해 처음으로 관련 예산 2100만원을 배정했다. 송파구는 지난해 삼환가락아파트 등 6개 단지에 82대의 냉·난방기를 설치했다.
다만 지원을 받으려면 입주자 대표회의 의결 후 구청 공동주택과에 방문 접수하는 등 절차가 필요하다. 에어컨 설치는 자치구가 지원하지만, 사용에 드는 비용은 주민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하루 8시간씩 에어컨을 틀 경우 1대당 전기세는 3만원이 채 안 된다. 이에 따른 부담액은 가구당 수십 원에서 수백원 규모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경비원 근무환경 개선에 대해 많은 구민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경비원 등 공동주택 근로자들이 안전하고 존중받는 근무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사업을 확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