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기본소득과 고용보험의 우선순위

관리자 | 2020.06.15 09:24 | 조회 891

[세상읽기]기본소득과 고용보험의 우선순위

                

기사입력2020.06.13. 오전 3:00            
최종수정2020.06.13. 오전 3:01            
                    

            
[경향신문] 

기본소득이냐 전 국민 고용보험이냐는 논쟁이 일각에서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워낙 복잡하고 큰 주제들이라 거두절미하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만 짤막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이 두 정책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므로, 양자택일의 문제로 논의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현재의 코로나19 사태라는 상황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선후를 정하자면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이 제도가 전면적으로 채택된다면 향후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결정적인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본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기본소득은 분명히 21세기의 산업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또 필연적인 내용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정책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를 ‘미래에서 날아온 도자기 조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개인에게 아무 조건도 없이 재산 및 소득 여부와 무관하게 매달 60만원 정도를 일생 동안 현금으로 지급’하는 파격적인 정책 아이디어가 그 모습 그대로 어느 날 곧바로 시행되는 일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이 정책은 엄청난 규모의 재원 확보를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완전히 재정립해야 한다. 노동 시장과 사회 복지 제도 전반에서도 지각변동이 벌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일과 여가를, 또 인생과 소득을 바라보는 세계관과 생활 문화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전벽해의 변화를 수반하는 제도라면 우리가 언젠가 도달해야 할 중장기적인 이상이자 ‘유토피아’로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진 작금의 긴급한 상황에서 구체적 대책으로 삼을 수 있는 정책은 되지 못한다. 그런데 오히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기본소득이 인구에 회자되는 쟁점으로 부각된 이유는 ‘재난지원금’이라는 국민적 경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지원 정책의 긴급성과 보편성이 강조되어 기본소득과 비슷한 외양을 띠었을 뿐, 이는 어디까지나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수당’이지 온전한 의미에서의 기본소득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지금 당장 긴급하게 필요한 일은 코로나 위기에 더욱 취약한 이들에게 더 많은 지원이 가도록 하여 사회가 붕괴할 수 있는 ‘약한 고리’를 두텁게 보강하는 것이다. 지금 모든 나라에서 코로나 사태가 기존의 불평등을 급격하게 악화시키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 시간제 노동자, 프리랜서 등은 취업이냐 실업이냐라는 기존의 이분법에 근거한 제도 장치로는 제대로 포착하고 보호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러한 이분법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경제 활동의 형태와 종류를 막론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모든 경제 활동 인구가 일정한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보험을 전면 개편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전 국민 고용보험의 제안이 지금 장기화 조짐이 뚜렷이 보이는 코로나 사태에 맞설 수 있는 적실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기본소득을 배척하거나 대체하기는커녕, 기본소득으로의 먼 여정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게 만들어 줄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눈뜨게 만들어 줄 최우선의 과제는, 우리 이웃들 다수가 처한 노동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완전고용’이라는 20세기 자본주의의 구호가 옛말이 되어 버린 지금, 사람들의 다수는 ‘평생직장’과는 거리가 먼 삶의 형태를 영위하고 있다. 자신이 취업한 상태인지 아닌지, 했다고 해도 얼마나 갈지 그 뒤에는 무얼 하며 살아가게 될지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삶을 꾸려갈 소득의 흐름을 보장할 수 있을까. 전 국민 고용보험의 제안은 바로 이러한 우리 현실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현재의 조건에서 볼 때, ‘모두가 소득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기본소득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와 사상을 사회 성원 전체의 합의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실마리가 될 것이다. 투자가이든 고용주이든 정규직이든 시급제 노동자이든, 형식적인 실업보험이 아니라 ‘모두가 모두의 소득을 함께 보장하자’는 방향이야말로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방향이라고 믿는다.

국제기본소득네트워크의 창시자인 필립 반 파레이스 교수가 강조하듯, 기본소득은 점진적으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뒷문으로 슬쩍’ 들어올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기본소득이 ‘유토피아’라면, 전 국민 고용보험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정거장’ 혹은 ‘잠정적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tentandavia@naver.com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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