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30년 전 '파업전야'가 보여준 노동현실

관리자 | 2019.04.15 10:01 | 조회 1286

”30년 전 ‘파업전야’가 보여준 노동현실…지금은 달라졌을까요?”


등록 :2019-04-15 04:59

                        
  • 이용배 장산곶매 대표·장동홍 감독·김동범 배우

최루탄·헬기 동원한 정권 탄압에
공식 상영 막혔던 최초의 노동영화

“노동자들 무작정 만나 시나리오 제작
블랙리스트 오를까 장소 섭외도 난항
영화가 제 몫 해낸 건 민중들 덕”

“노동현장서 ‘한수’가 넘쳐나는 시대
스스로를 흙수저를 일컫는 2030이
나와 내 주변 얘기로 많이 봐줬으면”


30년만에 극장 정식개봉하는 노동영화 <파업전야>의 주연배우 김동범, 제작단체인 장산곶매 이용배 대표, 장동홍 감독(맨 왼쪽부터)이 12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를 나눴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30년만에 극장 정식개봉하는 노동영화 <파업전야>의 주연배우 김동범, 제작단체인 장산곶매 이용배 대표, 장동홍 감독(맨 왼쪽부터)이 12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를 나눴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아~민주노조 우리의 사랑~투쟁으로 이룬 사랑~ 단결! 투쟁! 우리의 무기~너와 나 (너와 나)~철의 노동자~’
서울역이나 광화문 집회 현장을 지나쳐 본 사람이라면 귓가에 맴도는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 노동운동사를 상징하는 대표곡 ‘철의 노동자’다. 가사만 들어도 뭔가 ‘불순함’이 느껴진다고? 이 노래는 싱어송라이터 안치환이 작사·작곡한 곡으로, 한국 최초의 노동영화이자 독립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파업전야>(1990)의 삽입곡(OST)이다. 당시 노태우 정권의 혹독한 검열과 탄압에 공식 상영의 길이 막혔던 이 영화가 리마스터링을 거쳐 다음 달 1일(노동절) 비로소 스크린에 걸린다. 무려 30년 만의 정식 개봉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더 가난하고 천대받는 세상, 침묵과 무관심이 현명함으로 통하는 세상”에 큰 파장을 일으킨 영화 <파업전야>의 주역들을 30년 만에 소환했다. 영화를 제작한 ‘장산곶매’의 이용배 대표(현 계원예대 교수), 장동홍 감독, 그리고 주연 배우 김동범(현 문화창작집단 ‘날’ 제작 피디)이 지난 12일 오후 <한겨레>에 모여 앉았다.

영화 <파업전야>의 한장면.                    
영화 <파업전야>의 한장면.

■ 노동영화 <파업전야>와 장산곶매 “이 영화가 디브이디(DVD)로 발매(2008)된 적은 있어요. 하지만 30년 만에 극장 개봉이라니 감회가 새롭네요. 당시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 궁금도 하고요.”(이용배)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해 정식 개봉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니 의미가 남다르네요. 무엇보다 빵빵한 사운드와 4K 디지털 효과로 무장한 완벽한 컨디션에서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장동홍) “개인적으로는 제 배우 인생에 <파업전야>가 숙명 같은 작품이란 걸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제 데뷔작이자 대표작이 이런 극적인 방식으로 개봉되다니요. 하하하.”(김동범)

30년 만의 정식 개봉을 앞둔 소감을 묻는 첫 질문에 셋은 너나 할 것 없이 ‘추억’에 잠겼다. 추운 겨울 촬영장소 섭외를 위해 동동거리며 공단을 누볐던 기억, 최루탄 터지는 노동현장에서 숨바꼭질하듯 상영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고 했다.

<파업전야>는 1988년 호황을 누리던 동성금속을 배경으로, 철야와 잔업에도 쥐꼬리 월급을 받으며 착취를 당하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과 주인공인 20대 노동자 ‘한수’의 각성을 그린다. 각 대학 영화 동아리 출신들이 모여 만든 ‘장산곶매’가 제작했다. 영화제작사 명필름 이은 대표, 음악평론가 강헌, <접속>의 장윤현 감독 등 문화계의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바로 이 단체 출신이다.

“장산곶매는 시대 상황을 담은 사회비판 영화를 만들고자 88년 결성됐어요. 소위 ‘각 대학 불순분자’의 집합소였던 셈이죠. 하하하. 첫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 <오! 꿈의 나라>(1989)였는데, 큰 파장을 불러왔어요. 이 작품을 통해 장편영화가 가진 파괴력을 인식하게 됐죠. 당시는 87년 6월 항쟁에 이은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지던 시기라 장산곶매의 차기작은 노동영화라는 데 의견이 모였어요.”(장동홍) 이용배 교수가 장 감독의 말을 받아 설명을 이어갔다. “노동현장을 잘 모르니 취재부터 시작했어요. 무작정 노동자들을 만나보자며 인천 민노협(민주노동자협의회)을 찾아가 도움을 구해 시나리오를 만들었죠.”

1990년 연세대 강당 상영 당시 사진. 1600석 객석에 2000여명이 몰린 것으로 추산된다. 명필름 제공                    
1990년 연세대 강당 상영 당시 사진. 1600석 객석에 2000여명이 몰린 것으로 추산된다. 명필름 제공
■ 민중과 함께 한 제작·상영투쟁…정권의 탄압 촬영장소 섭외와 캐스팅 또한 난항이었다. 장소를 빌려주거나 이 작품에 출연할 경우, 즉각 ‘블랙리스트’에 오를 터였다. 장산곶매는 각 대학 연극동아리의 문을 두드렸고, 대학로 연극판을 샅샅이 뒤졌다. “89년 겨울, 저는 서울대 총연극회 ‘얄라셩’에서 활동 중이었어요. 한 선배의 제안으로 장산곶매에 인터뷰 필름을 만들어 보냈죠. 근데 덜컥 ‘주연’으로 캐스팅됐다는 거예요. ‘웬 떡이냐’ 싶어 당장 출연을 결정했죠. (블랙리스트) 걱정 같은 건 안 했어요. 오히려 첫 영화니 잘해 낼 수 있을까 고민이 컸어요.” 김동범 배우는 “이젠 스타가 된 김의성씨와 정진영씨가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우리 셋이 ‘서울대 총연극회 꽃미남 3인방’으로 불렸다”고 소개하며 껄껄 웃었다.

촬영장소는 인천 민노협 도움으로 부평5공단을 돌아보던 중 파업에 돌입한 한독금속 노동자들의 협조를 받았다. “기적이었죠. 냄비를 찍어내는 큰 프레스 기계와 용광로가 있는 공장이라 촬영장소로는 딱이었어요. 점거농성 노동자들 틈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이 2주간 합숙을 하며 부랴부랴 찍었어요. 사쪽에서 공장 전원을 끊고 방해를 했는데, 노동자들이 청계천에서 퓨즈와 전선 등을 사 와 도와줘 무사히 촬영을 마쳤어요.”(이용배)

우여곡절 끝에 영화가 완성됐지만, 극장 상영을 할 수는 없었다. 노태우 정권은 첫 상영장소였던 혜화동 예술극장 한마당에 공권력을 투입해 필름과 영사기를 압수하는 등 탄압했다. 당시 상황은 <한겨레> 등 언론보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땐 필름 현상소가 세 군데 정도밖에 없었어요. 모두 거절하는 통에 제일 작은 곳에서 간신히 현상했으니 필름이 부족해 절대 빼앗기면 안 됐어요. 혜화동에 압수수색이 들어올 걸 예상하고, 빈 릴을 걸어놓는 작전을 짰죠. 이후 대학 영화 동아리와 독립영화단체, 지역문예단체가 총결집해 ‘상영탄압분쇄투쟁위원회’를 꾸렸고, 상영장소마다 사수대가 결성돼 필름과 영사기를 지켜줬어요.”(장동홍)

정권의 탄압은 광주 전남대 상영에서 극에 달했다. 헬기까지 동원한 경찰이 전남대 안까지 밀고 들어왔다. 페퍼포그(시위진압용 차량) 최루탄에 대학생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대학가와 노동현장을 순회하는 ‘상영투쟁’ 열기는 뜨거워졌다. “관람료를 받는 대신 모금함을 돌렸는데, 돈은 물론 금목걸이·반지까지 기부하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파업전야>를 만든 건 장산곶매지만, 이 영화가 제 몫을 하도록 해 준 건 민중들이었습니다.”(이용배) 당시 <파업전야>는 30만명 이상이 관람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렇게 “<파업전야>는 독립영화의 블록버스터, 주연배우 김동범은 운동권의 아이돌”로 떠올랐다.

30년만에 정식 개봉하는 <파업전야>의 공식 개봉 포스터. 명필름 제공.                    
30년만에 정식 개봉하는 <파업전야>의 공식 개봉 포스터. 명필름 제공.

■ 영화사 새로 쓴 작품…현재적 의미는? <파업전야>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한국영화사를 다시 쓰는 역할을 했다. ‘영화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장산곶매는 ‘공연윤리위의 사전검열 제도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6년 뒤인 1996년 10월4일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이끌어냈다.

현실참여를 선언하며 제작·상영 투쟁을 했던 장산곶매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설립과 교육개혁 문제를 다룬 <닫힌 교문을 열며>(1992)를 끝으로 해체됐다. 멤버들은 유학을 떠나거나(장윤현), 충무로에 진출하거나(이은·장동홍·홍기선),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이용배)가 되는 등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이제는 “1년에 한 번 송년회 때 모여 옛날을 추억하고, 영화 이야기도 나누고, 싸우기도 하는 친목모임”이 됐다.(장동홍)

하지만 장산곶매의 <파업전야>를 이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또 하나의 약속>, <카트>(2014), 애니메이션 <태일이>(제작 중)에 이르기까지 노동영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파업전야>의 정식 개봉이 가지는 현재적 의미가 이 연장선에 있다고 했다. “촬영장소였던 인천 한독금속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상전벽해죠. 그런데 노동 현실은 달라졌을까요? 이 영화가 우리가 쉽게 눈감는 뼈아픈 노동 현실을 되돌아보는 자극제가 되기를 바라요.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흙수저’라 일컫는 20~30대 젊은층이 많이 보길 기대합니다.”(이용배)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뼈빠지게 일만 했던 영화 속 한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비정규직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죽은 하청노동자 김용균,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 활동을 하다 자살한 염호석…. 우리 사회에 ‘한수’는 여전히 넘쳐납니다. 관객 모두가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로 이 영화를 바라봐 주세요.”(김동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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