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반년째 월급 안 준 사장이 큰소리 칠 수 있는 이유

관리자 | 2021.02.09 09:11 | 조회 634
KBS

[취재후] 반년째 월급 안 준 사장이 큰소리 칠 수 있는 이유

송락규 입력 2021. 02. 09. 08:02 수정 2021. 02. 09. 08:19 


KBS 사회부는 어제에 이어 오늘(9일)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절박한 문제 중 하나인 '임금 체불'과 관련된 이야기를 연속 보도할 예정입니다.

어제 첫 순서로 돈이 있는데도 임금을 주지 않는 이른바 '악덕 체불' 사례를 보도했는데요. 방송에 미처 담지 못한 뒷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반 년째 임금을 받지 못한 직원은 왜 아직도 임금이 체불됐다는 확인서조차 받지 못했는지, 도리어 임금을 체불한 사장이 큰소리 칠 수 있는 이유가 뭔지 따져보겠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서울의 한 부동산 임대관리 회사에서 근무한 이 모 씨, 이 씨는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월급 750만 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급이 나오지 않은 건 일을 시작한 첫 달부터였습니다. 회사 사장은 "투자사들로부터 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며 조만간 월급을 주겠다"며 이 씨를 안심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째 달, 셋째 달에도 급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사비까지 들여 영업을 뛰어야 하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회사 사장은 이 씨가 퇴사한 뒤에도 밀린 임금을 곧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역시나 말뿐이었습니다. 이 씨는 돈도 돈이지만, 사장의 거짓말을 계속 듣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합니다. 사장은 이 씨에게 "회사에 할 일이 태산이니 다시 나오라"고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씨를 포함해 임금이 체불된 것으로 확인된 직원만 최소 6명, 체불 금액만 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임금체불 사장-직원 통화 녹음(음성변조/2020년 8월)

직원: 돈이 나와야 하는 건데 돈이 안 나오면 어려운 거죠.
사장: 아니 부장님 나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 그냥 나오세요 회사로.
직원나와서 뭐해요?
사장: 나와서 뭐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할 일이 태산 같이 많아졌어요. 제가 화요일날까지 다 정리할게요. 대신 조건, 이거 내가 드리면 들어오세요. 면접 그만보시고 오시라고요. 할 일이 태산 같아요 지금.

■신용불량자 위기에 공사장으로…노동청 조사는 지지부진

월급이 반년 넘게 밀리면서 이 씨는 급기야 신용 불량자가 될 처지까지 몰렸습니다.

그동안 이 씨가 대응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이 씨는 지난해 8월 말 고용노동부 부천지청에 임금이 체불됐다며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두 달 뒤 부천지청은 해당 사건을 고용노동부 서울본청으로 넘깁니다. 임금을 체불한 회사의 사무실이 서울에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사이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이 씨는 공사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이 씨는 "막노동을 하면 하루 두 끼는 공짜로 밥을 줍니다. 돈을 버는 것도 버는 것이지만, 당장 끼니라도 해결하기 위해 공사 현장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0일 월급을 받지 못해 고용노동청 서울지청에서 조사를 받은 이 모 씨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진정 제기 두 달 뒤쯤, 이 씨는 노동청 서울본청으로 사건이 이관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 씨는 근로감독관에게 "이미 부천에서 조서를 다 작성했는데 또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고 물었고, 해당 근로감독관은 '이관된 자료가 없어 조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씨는 근로감독관이 요청한 날짜에 출석을 하지 못해 진정을 다시 접수해야만 했습니다. 임금이 체불됐다는 진술을 두 번 해야 했던 셈인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근로감독관은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사업주와 노동자가 함께 조사를 받는 '대질조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습니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이 씨는 근무를 마음대로 조정하기도 힘들었지만, 어렵게 날짜를 조정해 출석일을 지난달 13일로 잡았습니다. 그러나 출석 당일, 근로감독관은 돌연 사업주가 출석하기 어렵다고 연락이 왔다며 또다시 출석일을 1주일 연기했습니다.

■반년째 임금체불 확인 못 받은 직원…"누구를 위한 노동부인지"

지난달 20일, 이 씨는 마침내 노동청의 대질 조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첫 월급을 못 받은 지 반년 만에, 진정을 제기한 지 3개월 만에 이뤄진 대질 조사였습니다.

이 씨는 회사 사장이 임금 체불을 시인하며 곧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 녹음파일을 갖고 있습니다. 대질조사에서 사장 역시 임금 체불 자체는 인정하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아직 노동청으로부터 임금 체불 여부를 공식적으로 확인받지는 못했습니다. 체불 금액을 놓고 당사자 사이에 이견이 있는 만큼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정확하고 공정한 사건 처리가 중요하다는 노동청의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당장 돈이 급한 이 씨 입장에서는 답답할 만도 합니다.

이 씨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근로감독관이 자신의 어려움을 방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습니다. 대질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임금을 주지 않아 잘못한 건 사장인데, 마치 오히려 자신이 죄를 지은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겁니다.

이 씨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격언을 머릿속에 새기며 살고 있는데, 임금 체불을 처음 겪어보니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며 "업체 사장도 사장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조사를 질질 끌고 있는 노동청이 정말로 노동자를 대변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취재진에 "2주 안에 지급하겠다"던 회사 대표…약속 또 어겼다

취재 과정에서 같은 회사에서 역시 임금이 밀린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 역시 지난해 12월 진정을 제기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들에 대한 조사는 근무 장소가 달랐다는 이유로 이관 없이 부천지청에서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달 22일 대질 조사를 위해 부천지청에 출석한 회사 대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회사 대표는 뜻밖에 당당한 모습이었습니다. "KBS가 무슨 이유로 이런 것도 취재를 나오느냐"며 취재진을 나무라는 듯한 여유까지 보였습니다.

지난달 22일 임금 체불 진정 사건으로 고용노동부 부천지청에 출석한 회사 대표가 취재진의 카메라를 가리고 있다.


회사 대표는 투자금을 받지 못해 돈을 못 줬을 뿐 자신에게는 아직 14일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사건이 '임금 체불'로 결론 나기까지 2주 정도 걸린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2주 안에 밀린 월급을 모두 지급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마저도 허언에 그쳤습니다. 18일째인 오늘(9일)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임금이 체불된 직원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입니다. "2주 안에 주겠다"는 공언은 첫 달 월급이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사장이 늘 해오던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회사 사장, 또다른 부동산 임대 관리 회사를 차려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직원들 줄 돈은 없다면서, 회사를 운영할 돈은 있는 셈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임금체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두 노동지청은 절차대로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 체불 진정 사건이 처리되는 데 평균 일수는 44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석 달치 월급을 못 받은 직원은 진정을 접수한 지 163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체불 임금 확인서'조차도 발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 노동청 출석 28차례 불응한 사업주...구속됐다가 풀려난 이유는?

또다른 임금 체불 사례를 볼까요?

전주의 한 태양광 분양업체 사장은 지난해 3월부터 직원 11명의 월급과 퇴직금 등 1억 7천만 원을 체불했습니다.

사건을 접수한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은 정확한 사실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업체 사장에게 28차례에 걸쳐 출석을 통보했지만, 사장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반년 가깝게 진행된 출석 요구에도 불응하자 전주지청은 지난해 12월 해당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업체 사장이 이전에도 82건 정도의 임금 체불 사건으로 조사를 받았던 내용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구속됐던 이 업체 사장,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났습니다. 임금 체불이 '반의사불벌죄'라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구속된 사장이 부랴부랴 뒤늦게 밀린 월급과 퇴직금 등을 직원들에게 지급하면서 풀려난 겁니다.

아무리 상습, 고의적인 임금 체불이라더라도 막판에 사장이 밀린 급여를 지급하기만 하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현실인 겁니다. 노동청 조사 단계든, 검찰 기소 이후든 관계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임금을 체불한 사장은 밀린 돈을 최대한 늦게 지급하지 않을까요?

고용노동부가 지난 3년간 상습 임금 체불을 이유로 실명을 공개한 사업주는 884명입니다.
[바로가기] 체불사업주 명단공개
https://www.moel.go.kr/info/defaulter/list.do

그런데 이 역시 임금 등 체불로 2번 이상 유죄가 확정되거나 체불 총액이 3천만 원 이상인 체불 사업주만 해당됩니다. 앞서 살펴본 임금을 체불했던 사장들이 이 명단에 빠져 있는 이유입니다.

송락규 기자 (rockyou@kbs.co.kr)


출처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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